백 성 호(정치학 박사)
17세기 프랑스의 천재적인 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파스칼(Blaiss Pascal)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하였다. 천지(天地)는 원래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상태이다. 무시무시한 먹이사슬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하고 미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지구상의 그 어떠한 생물체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간은 자신의 사고능력을 발휘하여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하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냉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번성해 왔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송되고 있다. 놀랍게도 오래 전에 파스칼(Blaiss Pascal)이 바로 이점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Michel Foucault)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다. 인간이 그려내는 경험의 세계는 요지경이다.
그 세계는 알쏭달쏭할 뿐만 아니라 고정불변의 정답보다는 변화무쌍한 대답들로 꽉 채워져 있다. 왜냐하면 오감을 통해 얻는 느낌이 개인들마다 각양각색이고, 그로 인하여 개인들의 경험이 다채롭고 다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 공간, 자연, 문화, 사회, 교육 등등 다양한 요인들로부터 비롯된다.
경험의 차이는 상이하고 다양한 사유방식들을 형성한다. 사유방식의 상이함은 특정현상이나 이슈에 대한 의견이나 견해의 차이를 유발한다. 그것은 대립을 초래하여 갈등을 조장한다. 의견이나 견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대립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갈등은 빠르게 고조된다. 더욱이 생사여부의 문제가 결부되면, 그것은 매우 빠르고 격렬하게 파국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인류사에 등장한 것이 바로 정치이다. 정치의 목적은 개인들 간의 타협과 조정을 통하여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파국의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치는 주로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작동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개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장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가 법적‧제도적으로 확고하게 보장될 때,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꽃을 피워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정치참여는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할 수 있다. 개인들은 특정한 정치현상이나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인식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한다. 그것들이 가감 없이 취합되어 대동소이하게 분류되면, 그것이 여론이 된다. 여론은 정치권에게 원하는 그 사회구성들의 주된 바램이다. 개인들은 자신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요구가 정책결정과 집행을 통하여 실현되길 기대한다. 그래서 여론의 지지를 광범위하고 강하게 받는 정책일수록, 그 정책결정과 집행의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가적 과제들 중에서 국가안보와 더불어 강조되어 왔던 것이 통일국가의 수립이다. 원래 하나이었던 것이 두 개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원래 하나로 합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분단은 민족의 분열이고 민족이익의 훼손이기 때문에, 통일국가의 실현은 민족 전체의 과제이자 염원이다. 이것은 민족 전체의 역량을 강고하게 결집하여야 가능하다.
통일에 대한 국론이 하나가 될 때, 결집의 속도는 빨라지고, 그 강도는 엄청나게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녹록지가 않다.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측면에서 비롯된 갈등구조들이 존속되고 있다. 이념적으로 ‘친북(용공) 대 반북(반공)’ 간의 이념갈등이 여전히 분출되고 있고, 정치적으로 ‘독재 대 민주세력’ 간 갈등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성장 대 분배’ 간 갈등이 쉴새없이 아웅다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세대 간 갈등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옥신각신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이 심각한 정치적 갈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밖에도 상당수의 갈등요인들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통일에 대한 여론수렴과 형성을 하는데 있어서 치워 버리기 버거운 걸림돌일 뿐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통일국가를 대한 세대 간 차이가 점점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2021년 9월 15일자 중앙일보의 ‘창간기획 2040 세대차이 보고서’ 기사에 의하면, 남북통일에 대하여 20대의 47%가 “필요하지 않다”고 한 반면에, 40대의 74%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는 것이다. 통일국가의 수립은 당면한 민족적 과제이자 미래의 당위적 과제이다.
현 시점에서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면, 당연히 그것은 다음 세대에 민족적 과제로 부여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통일국가에 대한 세대들 간 인식의 차이는 없을수록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려운 것이라면, 그 인식의 격차가 좁혀지면 질수록, 통일국가의 실현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이다.
통일국가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측면들이 조화롭게 어울릴 때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독일통일의 교훈처럼, 국제적 환경과 남북한 간의 여건, 그리고 국내적 조건이 절묘하게 합치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환경과 남북한 간의 여건이 통일에 매우 유리하게 조성된다고 하더라도, 국내적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통일국가에 대한 염원은 일장춘몽에 불과할 것이다. 국내적 조건의 마련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국내적 조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의 주체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그것의 첫 걸음은 갈등구조들을 제거하거나 억제하여 통일에 대한 건강하고 유익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어 이것이 통일역량을 육성하는데 자양분으로 활용되어야할 것이다. 특히 다음 세대가 통일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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