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바지한 이승만 전(前) 대통령의 서거 51주기를 기리는 「이승만 대통령 서거 제51주기 추모식」이 7월 19일(화) 오전 10시 30분에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 우남 이승만 박사 공적 ◈
우남 이승만 박사(1875. 3. 26.~1965. 7. 19.)는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하였다. 1896년 서울에서 서재필의 지도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여 《협셩회회보》라는 주간신문을 발간하고, 논설위원으로 러시아의 절영도조차에 대해 국민이 합심하여 국권보호에 나설 것을 촉구하여 조차요구를 철회시켰다. 《협셩회회보》를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每日新聞)》으로 전환시킨 뒤 협성회 회장 겸 매일신문 사장으로 외국의 이권침탈을 저지하는데 앞장섰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 간 박사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조지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10년 귀국하였다. 1912년 세계감리교대회에 한국 평신도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태평양잡지》,《태평양주보》를 발간하며 독립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이던 박사는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웠다.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0월 귀국하여 “뭉치고 엉키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못 사나니 다 같이 하나로 뭉치자”고 역설하였다.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정부에서는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보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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